‘칼레의 시민 Les bourgeois Calais’은 유럽사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거의 모든 역사책에 실려 있고, 특히 저명한 조각가 로댕이 1896년에 이를 소재로 걸작을 제작한 이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백년전쟁 초기인 1347년 8월 4일, 유럽 대륙으로 건너와 공세를 펼치던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의 포위 공격에 맞서 1년 동안 강력하게 저항하던 칼레 시민들이 드디어 항복했다. 칼레 시민들은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가 와서 그들을 구원해줄 것을 고대했지만 크레시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스군은 칼레를 구출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저항에 격노한 영국 국왕은 칼레 시민들을 전원 몰살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과 특히 필리파 왕비가 간곡히 설득하자 왕은 6명의 부자 시민이 자원하여 사형을 당하면 나머지 시민들의 목숨을 구해주겠노라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시장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와 5명의 부유한 시민이 스스로 목숨을 희생하기로 하고, 왕이 말한 대로 목에 밧줄을 두르고 셔츠 바람에 맨발로 걸어나왔다(로댕의 작품은 이 순간 그들이 겪는 죽음의 고뇌를 드라마틱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때 다시 왕비가 탄원하여 용감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오랫동안 역사가들은 이 이야기의 사실성에 대해 의심해왔다. 이미 18세기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학자인 볼테르는 “원래 영국 국왕은 시민들의 목에 두른 밧줄을 세게 죌 생각은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바 있다. 최근 프랑스의 한 연구자는 이 이야기의 실제 의미가 왜곡·과장됐으며, 그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 14세기의 연대기 작가인 장 프루아사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프루아사르는 또 다른 연대기 작가인 장 르 벨의 기록에서 영감을 얻어 이 이야기를 적었고, 이를 더 극적인 투로 기술했다. 특히 필리파 왕비의 역할을 미화했는데, 알고 보니 이 왕비는 프루아사르의 후원자였다!

칼레의 사건을 기록한 당대 문건은 모두 20여 개나 되는데, 그것들은 모두 시민들의 행위가 항복을 나타내는 연극적인 의식儀式이었다고 적고 있다. 즉, 사형과 비슷한 장면을 연출하여 전적으로 항복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에 불과했다. 말하자면 6명의 시민 대표는 처음부터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았던 것이다. 원래 게르만족의 관습으로 죄인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의미로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행진하는 하르미스카라harmiscara라는 의례가 있었는데, 칼레 시민들의 행위는 여기에서 발전해 나왔으리라는 점도 밝혀졌다. 

이는 원래 종교적 참회와 관련이 있다. 칼레 시민 대표들이 맨발에 흰 셔츠를 입고 목에 밧줄을 두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애국적인 작가 프루아사르만이 이 사건을 숭고한 행위로 미화하며 민족정서에 호소했던 것이다.

16세기 이후 이 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의 의미가 잊혀져갔지 때문이다. 이제 프루아사르가 왜곡한 의미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칼레의 시민들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의미가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1765년에는 드 벨루아라는 작가가 애국적인 방향으로 「칼레의 포위」라는 극을 써서 대중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렇지만 같은 시기에 드 브레티니라는 연구자가 이런 새로운 해석 방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 시장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사실을 밝히면서 애국적인 희생일 수가 없다는 지적도 했다.

프루아사르식의 해석이 대중의 감성을 완전히 지배한 것은 민족주의의 시대인 19세기다. 이제 많은 역사 교과서들이 ‘칼레의 시민’을 외세에 저항하며 동료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고자 한 애국적인 영웅으로 크게 부각시켰고, 문학과 예술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몰랐던 진실을 새로 알게 되는 희열보다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신화가 깨졌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산처럼 출판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히스토리아 노바]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