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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없는 세계백지도 100x70
제조회사 : 와이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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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하드 코팅 백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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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지에 글씨가 없는 백지도입니다.

2. 가로 100cm x 세로 70cm 크기입니다.

3. 초 중 고교 모둠별 수업에 활용되어지고 있습니다.

4. 플라스틱 재질의 견고한 하드 코팅으로 구겨짐이 없으며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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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법이 무궁무진한 글씨 없는 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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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낙서를 하고 생각날 때마다 지형 및 문화재나 특징을 써 보는 사회, 지리, 역사 시간에 모둠 별 수업 교구로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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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펜, 마카펜으로 쓰고 지우기 OK!  하드코팅 지도이며 유성펜은 연필 지우개로, 마카펜은 물 티슈나 휴지로 지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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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스틱 재질의 견고한 하드 코팅으로 구겨지지 않으며 오래 사용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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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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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향화되었을까? 

국가는 지정학에 따라 역사를 전개하고 국제역학의 벡터(vector)를 결정한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이상하리만큼 지정학에는 무심했다. 자주적 외교의지가 없으면 지정학에 관심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의 지리에 대한 관심은 한국적인 자연주의, 즉 풍토와 인간의 상관관계를 유추하는 풍수지리설이 고작이었다. 국제 정치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이는 조선 지식인의 시야가 소수의 실학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반도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誌]를 비롯한 지리지는 한반도 여러 지역의 지형, 주거 조건, 인심, 역사의 관계를 논했을 뿐이었다. 국경을 맞댄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나 외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내향적인 지리관이었다.  왜 내향화되었을까? 

............. 김용운 선생님의 [역사의 역습] 中에서 / 맥스미디어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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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Caspian Sea)'는 바다인가, 호수인가? 

...... 카스피해는 바다도 호수도 아니어, ‘특수한 지위를 가진 바다’여 


해(sea)란 육지가 아닌 움푹 파인 곳에 물이 담겨진 것이 전체적으로 이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


주장 1. 이름에 바다가 붙어 있고 물도 바닷물처럼 짜고 남한 국토의 4배의 면적으로 바다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주장 2. 카스피해는 대양(大洋)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육지로 막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카스피해를 '세계 최대 호수'로 알고 있다. 


주변국의 이해가 엇갈린 카스피해는 러시아·이란·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아제르바이잔 5개국에 걸쳐 있다. 5개국 정상들이 2018년 8월 12일 공동 정상회담을 열고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카스피해를 기존의 호수에서 특수한 지위를 가진 바다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카스피해 인접 5개국은 자국 연안에서 15해리까지 영해로 삼고, 25해리까지 배타적 어업권을 설정하기로 했다. 


또 해저자원 소유권은 국제법에 따라 당사국 간 합의에 의해 확정하고, 연안국 외의 군대가 카스피해로 진입하는 것은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1해리=1,85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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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의 노예, 라이베리아의 비극 

 1816년에 미국 워싱턴의 퀘이커교도들과 노예 소유주들이 주축이 되어 미국식민협회(American Colonization Society, ACS)가 결성되었다. 퀘이커교도들은 노예제에 반대했고, 노예 소유주들은 흑인들의 해방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은 흑인들을 아프리카에 되돌려 보내는 데 합의했다. 퀘이커교도들은 흑인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진정한 자유를 찾고, 아프리카의 기독교 선교에 기여하리라고 희망했다. 반면 노예 소유주들은 다만 아이티에서와 같은 노예 봉기를 피하자는 생각이었다. 


이 협회의 후원으로 1822년에 흑인 86명이 아프리카의 ‘곡물 해안’이라는 곳에 도착했고, 그 뒤 많은 흑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땅을 사기도 하고 현지 주민들한테서 빼앗기도 하면서 거주지를 확대했다. 1824년에 이 땅은 당시 미국 대통령(제임스 먼로)의 이름을 따 먼로비아라고 했으며, ‘라이베리아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역설은, 해방된 흑인 노예들이 세운 자유 공화국을 자부하면서 실제로는 미국 출신의 지배자들(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이 현지민들을 노예화했다는 점이다. 이주민들은 이곳에 미국 사회를 재창출하려고 했다. 남부 플랜테이션과 비슷한 집과 교회를 짓고 영어를 사용했다. 미국 국기와 거의 똑같은 모양을 한 라이베리아 국기를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그리하여 5퍼센트에 불과한 이주민들이 현지민들의 땅을 빼앗고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이후 이 나라의 경제가 쇠퇴하면서 큰 곤란을 겪게 되었다. 미국식민협회가 이미 손을 뗀 데다가 각국에서 빌린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서 마침내 국가가 파산하기에 이른다. 그나마 국가를 유지한 데에는 미국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미국의 투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파이어스톤사의 플랜테이션 투자였다. 타이어를 제조하는 이 회사는 아프리카에서 고무 농장을 운영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현지민들은 사실상 노예로서 혹사당했다. 


1980년대 이래 쿠데타와 내전을 거치면서 수십만 명이 살해당한 처참한 비극의 이면에는 이런 비극적인 역사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 주경철 지음 [문화로 읽는 세계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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