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x 68cm, 축척 1/40,000,000
최신 지명 반영 국기·시간대 표기 도서 국가 선명하게 쓰고 지우는 학습 지도 찢어지지 않는 하드코팅
호르무즈해협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아라비아해를 연결하는 매우 좁은 해협이다.
미국

바다라는 방패, 평야라는 식량 창고 강이라는 물류망을 모두 가진 나라
왜 강대국은 대만에 민감할까?

대만은 단순한 섬이 아니라 태평양의 길목을 지키는 ‘거대한 항공모함’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남태평양의 소규모 섬나라들도

지정학적·경제적 중요성이 커지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기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색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고, 문양에는 종교·자연·이념·민족을 상징하는 뜻이 담겨 있다.
1시간은 경도 몇도일까?

지구 1바퀴는 360도이니 360 ÷ 24 1시간은 15도가 된다!
막 써도 끄떡없는 하드코팅

구겨지거나 찢어지지 않는다. 날카로움도 ZERO!
하드코팅 지도는

보드마커, 네임펜으로 쓰고 지울 수 있다.
네임펜 자국은 연필 지우개로 쓱쓱
★ ★ ★ ★ ★
지금 구매하면
♥ 사은품 증정 ♥

[ 책상용 세계 지형도 ]
★ ★ ★ ★ ★

★ ★ ★ ★ ★
왜 태평양은 '태평양'이라 부를까?

태평양 [太 클 태, 平 평평할 평, 洋 큰바다 양]
세계 바다 면적의 반을 차지하고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따위의 대륙에 둘러싸인 바다!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은 스페인의 항해사 마젤란이다.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주도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태평양”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Mare Pacificum(평화로운 바다), the Pacific Ocean(천하태평한 바다)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이름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험난하고 거친 파타고니아 해협(마젤란 해협)을 통과한 후 고요하고 조용한 바다가 나타나자 그 잔잔한 바다에 감동하여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태평양은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과 같은 열대 저기압이 그치지 않는 험난한 바다이다.
왜 대서양은 '대서양'이라 부를까?

대서양 [大 클 대, 西 서양 서, 洋 큰바다 양]
유럽, 아프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큰 바다! 서양의 경우 1602년 명나라에서 포교 중이던 마테오 리치 신부가 그린 세계지도에서 최초로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대서양의 뜻은 '서양 전방에 펼쳐진 커다란 바다'라는 뜻이라고 하며 그 지도가 현재도 현존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의 국기에는 왜 초승달과 별이 많을까?

이슬람 국가의 국기에는 대부분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다. 그 이유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최초의 계시를 받던 밤하늘에 초승달과 별이 나란히 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메르카토르 지도는 실용적인 지도다

네덜란드 지리학자 '헤르하르뒤스 메르카토르'는 둥근 지구를 평면에 펴서 묘사할 때, 생길 수밖에 없는 면적의 왜곡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공 모양의 지구를 정확하게 평면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지구 표면을 원통형이 되도록 해 지구의 위아래를 넓게 그리는 투시도법을 선택한 것이다.
자오선을 직선으로 펴고, 위선의 간격을 적도에서 떨어질수록 크게 한 것도 아주 실용적인 목적이었다. 대신 자오선을 직선으로 펴고, 위선의 간격을 넓혀서 방위선이 직선으로 유지되도록 했다. 그렇게 해야만 지도 위에 정확한 방위각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는

지구 모양을 왜곡하지 않고 고정된 축척으로 평면에 옮길 수 없다는 것, 공 모양의 지구를 평면에 표현하면서 면적을 정확히 보여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어떤 제작 도법을 사용하든 지도에 나타난 면적은 실제 면적과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 3차원 공간의 2차원 재현은 객관성의 딜레마 뿐만 아니라 관점의 딜레마로부터도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도법을 사용하든 '우리 지도 제작 도법이 정확하다.'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메르카토르 도법은 식민지주의 잔재다. 라는 패터스의 비판은 오래가지 못했다.

1973년 독일의 역사학자 아르노 페터스는 전 세계 기자들을 모아 놓고, 메르카토르 도법을 유럽 중심주의와 식민지주의의 잔재라고 비판했다. 당시 이 투영법에 대한 비판은 매우 큰 반향을 얻었다. 60년대 말 학생운동이 유럽 대륙을 뒤흔든 직후였기에 이 주장은 터 큰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을 뿐이다.
전문 지도 제작자가 아니었던 패터스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지도가 가능하다는 사실주의적, 실증주의적 인식론을 여전히 고집했지만, 그가 제작한 지도는 '객관적인 지도'의 목표조차 이루지 못하고 그가 주장한 정확성과 객관성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으로 들어나 그의 주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메르카토르 투영법은 대표적인 재현 방법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시. 군 등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를 제작할 때 기본적으로 메르카토르 도법을 사용하고 있다.
★ ★ ★ ★ ★
|